"가정을 위한 기도" (시 119:153-160, 인도: 이장열)
오늘 본문인 시편 119:153-160절을 보면, "나를 살려주십시오" 또는 "나를 소성케 하여 주십시오"라는 기도가 3번에 걸쳐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간구의 근거가 주님의 약속, 말씀, 사랑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54절: preserve my life according to your promise. 156절: according to your laws(말씀), 159절: according to your love, NIV) 즉, 그분의 약속, 말씀, 그리고 사랑을 근거로 나를 소생케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속적인 팬데믹 상황 가운데 있는 우리도 원수들에게 쫓기고 있던 시편기자의 상황과 다르지 않기에 이 기도는 지금 우리가 드려야 할 기도인 것입니다.
시 119편은 히브리어 알파벳 22개를 이 각 문장의 첫 글짜로 사용해서 22개의 문단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Resh'라는 알파벳으로 매 문장이 시작되는데, 원래 영혼이란 뜻의 이 알파벳으로 쓰인 단어들을 찾아보다가 땅 (또는 흙)이라는 의미를 가진 "에레쉬"라는 단어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들이며, 불순종으로 인해 땅에서 수고해야만 먹고 살 수 있게 된 자들입니다. 이와 같이 하신 것은, 우리가 무엇으로 시작된 존재인지를 잊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니었을까요?
한낮 흙에 불과한 존재이며, 하나님께서 그의 호흡을 불어넣으셨기에 우리가 되는 것임을 기억하라고 말이죠.
물건도 고장나면 수리해야하고, 육체도 아프면 치료해야하듯, 우리를 영적인 존재로 만드셨기에 우리가 소생되기 위해서는 영이 소생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땅이 말씀의 씨를 잘 받아들일 때 좋은 땅으로 소성케 되는것이죠
시편기자의 살려달라는 이 간구는 궁극적으로는 말씀으로 그의 영을 소생케 해달라는 의미입니다.
영의 소생이 필요한지 여부는 우리가 얼마나 그분의 말씀으로부터 떠나 있는가에 따라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이 그분의 약속, 말씀, 사랑으로 소생되지 않으면, 이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는 본문에서와 같이 그분의 말씀을 잃어버린, 우상을 섬기고 분노를 터트리는 자들과 같이 될 것입니다. 그러지 않기위해, 시편기자와 같이 우리 영의 소생을 놓고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이번주는 각 자의 가정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냥 우리의 소원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각 가정에게, 개인에게 주셨던 약속의 말씀(예언의 말씀)을 다시 기억하고, 그 말씀에 근거해서 우리를 소생케 해주시도록 간구했습니다. 말씀의 소중함을 강조한 시 119편처럼 말씀을 떠난 기도는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기도를 회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