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2장, 인도: 강현수
누가복음 2장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임신한 마리아가 그 지역 어느 여관에서도 용납받지 못하고 마굿간에서 예수님을 낳으셔야 했음을 말씀하심으로써 예수님이 나실 때부터 세상의 거절을 받으셨던 분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조차 그분의 아들의 특별한 탄생 소식을 모두가 아닌, 특정한 자들에게만 알리셨음을 보게 됩니다. 그 택함을 받은 이들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안다고, 택함 받았다고 여긴 자들이 아니라, 밤에 양을 치던 목자들, 하나님의 약속을 주목하고 바라던 동방박사들(이방인들), 하나님을 진정 섬기던 소수의 유대인들(시므온, 안나 등)뿐이었습니다.
왜 목자들, 이방인들 그리고 소수의 유대인들 뿐이었을까요? 주님께서 우리의 진정한 목자 되심을, 하나님의 부름 받은 민족이지만 예수님을 버렸던 이스라엘이 아닌 진리를 듣고 구원 받을 이가 이방인들일 것임을, 그리고 하나님을 진정 구하는 겸손한 소수의 유대인들만이 메시야를 받아들일 것임을 미리 예표하신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주님은 언제나 그 말씀을 구하는 자들에게, 말씀에 대해 열린 자들에게만 말씀하시는 분이심을 보게 됩니다.
눅 2:34-35 “시므온이 그들을 축복한 뒤에, 아기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 가운데 많은 사람을 넘어지게도 하고 일어서게도 하려고 세우심을 받았으며, 비방 받는 표징이 되게 하려고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칼이 당신의 마음을 찌를 것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의 마음 속 생각들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떠합니까? 생명과 빛으로 오신 주님은 시므온의 말처럼 우리 마음의 죄를 모두 드러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조차 온전히 그분께 자신을 내어드리지 않습니다. 세상과 타협하고, 즐기고자 하는 마음이 방해되길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깊은 것을 알기 소망하기보다, 내가 지금 거하는, 안전하다고 여기는 이 상태에 머물고 싶어합니다. 문제는 이것이 진짜 안전한 것일까요?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막 9:43)
이 말씀은 이 땅에서의 삶보다 죽은 뒤에 맞게 될 영원한 세계가 얼마나 훨씬 더 중요한지를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안전함이 오히려 화가 될 수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이번 화요중보기도는 우리 모두 안에 주님을 깊이 용납하지 않았던 마음을 회개하고 우리와 속한 공동체, 교회들이 그분의 빛가운데 나아가도록 결단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결단하는 이들 가운데 주님께서 왕으로 용납되어지는 역사가 더욱 일어나게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