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 #65 “느부갓네살”
다니엘 4장 34절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자를 찬양하고 존경하였노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느부갓네살왕은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닮았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한다. 그는 두 번의 꿈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엄청난 경험이 있었음에도 결국은 매를 맞고(고난) 난 후에야 깨닫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게 된다.
처음의 꿈을 통해 하나님의 생각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 주셨지만 그는 그 뜻을 스스로 이루고자 자기를 위해 신상을 만든다. 그리고 다니엘의 3 친구를 풀무에 집어넣어 죽이고자 한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정하신 일을 반드시 성실함으로 이루시는 분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스스로 취하거나 이루고자 하는 어리석음을 피해야 할 것을 느부갓네살을 통해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내 삶에 말씀해 주신 하나님의 생각이 있는가? 그렇다면 기다려야 한다. 스스로 만들고자 취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길이 아닌 나의 악하고 불의한 자의 길인 것이다. [사 55장] 그런데도 우리는 스스로 만들고자, 이루고자, 취하고자 하는 일들을 서슴없이 행한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헛된 일이며 무지한 일인지를 쓰라린 경험을 통해 나중에야 깨닫고 후회한다.
미국대선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이 일에 대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도록 기다리고자 하는 사람과 자기의 뜻을 이루고자 어떻게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가운데 스스로 취하거나 이루고자 하기보다는 하나님이 마무리 짓도록 인내로 기다려야 할 때이다.
다니엘의 3 친구는 극렬히 타는 풀무에 들어가기 전에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는 믿음의 고백을 한다. 이 고백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기까지, 설사 이루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겠다는 고백이다. 우리 모두가 이런 고백을 모든 상황 가운데 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일까 생각해 본다. 하나님의 정하신 뜻에 대해 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고백이 바로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의 고백이라 믿는다. 내가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던 바이든을 지지하던 우리의 관점은 나의 뜻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길로) 이루게 할 때 우리는 마치 다윗의 고백처럼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받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반면에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거나 취하고자 하는 자는 원수의 목전의 상과 같이 신나고 좋은 감격스러운 상을 누릴 수 없다. 마치 탕자가 아버지의 것을 때가 오면 합법적으로 자기의 것으로 마음껏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있었음에도 탕자는 스스로 취하여 허랑방탕했던 경우와 같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선택은 나에게 있다. 하나님이 주실 때 받음으로 “좋은 것”으로 누릴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취하여 허랑방탕할 것이지…. 시 104편 "27이것들이 다 주께서 때를 따라 식물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28주께서 주신즉 저희가 취하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저희가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주님이 주시는 것만이 우리에게 진정한 만족을 줄 수 있다. 하나님의 약속이다.
지금 혹시 많은 시간을 기다려 왔는데…아직도 아무 조짐이 보이지 않는 때라면…내가 스스로 취하고자 이루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서 기다리는 자가 되기를 다짐하는 모두가 되기를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