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 #61 “비용을 예산 하는 자”


눅 14장 "27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28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찐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29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30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주님은 제자의 삶을 사는데 있어서 필요한 한 가지가 “비용을 예산 하는 것” 이라 하신다. 예산을 하지 않는 자는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예산은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드는 필요한 것들을 계획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용이 너무 커서 그 일을 이룬다 해도 가치가 없다면 그 일을 포기한다. 가능하면 예산된 비용 안에서 그 일을 맞추고자 하는 것이 상식이다. 가진 것이 예산보다 부족하면 일을 시작하지도 않는다.

제자가 되는데 비용을 예산한다는 것은 각자가 가진 것과 드는 비용을 헤아리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제자의 삶을 사는데 필요한 것, 가져야 할 것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는 것에 대한 진정한 마음의 소원(Genuine Heart’s Desire)이라는 생각을 주신다. 우리 안에 소원이 없어진다면 더 이상 부르심의 일을 감당할 수 없다. 간혹 우리가 듣는 단어 하나가 “burn out”이라는 단어이다. 어떤 일에 종사하다가 너무나 힘들고 지쳤을 때 더 이상 그 부르심의 일을 할 수 없는 한계에 도달한 경우에 사용하는 말이다. 주님의 제자로 사는 삶에도 burn out이 있을 수 있다. 그 때에 부르심을 끝까지 감당하고자 하는 마음의 소원을 되찾게 될 때 우리는 부르심의 삶을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지만 그 소원을 되찾지 못한다면 계속할 수 없다. 마음의 소원이 있는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Enabling Grace가 임하여서 그 일을 감당케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길이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작정한 사람이었기에 많은 수고와 핍박과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사도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서신서는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라고 시작한다.

제자로의 부르심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은 마음의 소원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상태가 어떤지를 아시고 “네가 정말 원하느냐? 예산을 헸느냐?”라고 물으신다. 38년된 병자를 만난 주님은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물으셨다. 그리고 나중에 그를 다시 만났을 때 [요 5:14절]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신것은 그 병자가 말로는 병이 낫기를 원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자기의 병의 원인이었던 죄를 떠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인 사실을 주님이 아시고 그에게 물었던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못에 들어가기 때문에 자신을 고칠 수 없었다고 탓하며 불평한다. 그는 있던 죄를 떠나지 못하고 그 죄에 익숙하고 편안한 사람으로 38년을 살아왔던 것이다. 주님이 깨우쳐 주시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는 병은 나았을 수 있지만 죄는 해결하지 못한 병자로 계속 살았을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고 한탄하던 베드로나 마음이 약해서 육신의 연약함을 극복하지 못하는 우리나 마찬가지이다. 주님이 예산하는 일을 통해 원하시는 것은 그 어떤 사건이나, 사람들이나, 상황을 막론하고 제자가 되기를 작정할 수 있는 소원인 것이다. 더 이상 처자식 때문에…먹고 살려다 보니…..등등의 핑계는 예산하는 제자에게는 합당하지 않은 일이다.

주님은 “먼저 앉아” 예산을 짜라고 하신다. 어디에 앉아야 할까? 하나님 앞에 앉는 것이다. 그분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이다. 그 일에 우선권을 두라고 하신다. 마르다의 동생인 마리아는 한 가지 좋은 것을 택하였다고 주님이 칭찬하셨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자 무엇보다 말씀이신 주님 앞에 먼저 앉는 것이 주님께 칭찬받을만한 일뿐 아니라 나를 위해서도 그것만이 진정 필요한 일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