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 #59 "삼손의 이야기" (강찬영)


사사기 13장 "2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중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더니
3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였으나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4그러므로 너는 삼가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찌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찌니라 5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나님은 삼손에 대해 (1)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고 (2)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아 (3)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으로 살라고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실인인 삼손을 통해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기로 작정하신다.

그런데 삼손은 나실인으로써 머리를 깍지 않은 것 외에는 지킬 것들을 지키지 않고 자기 멋대로의 삶을 살았다. 사자의 죽은 시체 가운데 생긴 부정한 꿀을 먹었고 그의 사생활은 문란하다 할 정도였다. 부모의 말도 듣지 않았다. 하나님께 바쳐진 거룩한 나실인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삼손이다.

어떻게 삼손은 그런 삶을 살게 되었을까? 한 마디로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거나 하나님을 구하지도 않고 머리카락을 통해 주신 superman의 힘을 의지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자기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도 삼손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모세도 스스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원이 되기를 원했다가 광야에서 40년을 지내야만 했던 일을 기억하지 않는가? 우리가 가진 지혜나 힘 또는 부를 의지할 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삶이 될 수 있다. 내가 의지하고 자랑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온 것임을 인정하며 말씀에 따라 살 때에만 하나님과 사람에게 자랑할 수 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렘 9장 "23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24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찌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삼손은 들릴라의 꾀임에 빠져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깨닫게 된다. 자기의 긴 머리털 자체에 힘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의 머리털을 통해 힘을 주신 것이라는 사실이다. 자기에게 힘이 있고 없고가 머리털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사사기 16장22절에는 “그의 머리털이 밀리운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어쩌면 삼손은 머리털이 자라자 마자 힘을 쓰려고 시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힘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 때까지는 머리털에 힘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머리털을 통해 그에게 힘을 주셨던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머리털이던 어떤 방법으로 주시지 않으시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삼손은 사 16장 28절에서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우리도 간혹 어떤 내가 가진 어떤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고 착각한다. 아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을 통해 그렇게 하셨다.

코비드 19로 인해 우리가 그동안 누렸던 많은 것들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시간이 많아도 가고 싶던 여행을 갈 수 없게 되었다. 돈이 많아도 할 수 있는 것에 제한이 생겼다. 왜 이런 일들을 허락하셨는가? 우리로 하여금 주신 것들을 통해 하나님을 자랑하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가진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자랑하는 자가 되라고 하신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말씀 앞에 서는 시간들을 코비드 19 사태 가운데 허락하신 것이다.

며칠 전에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나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주 세상적으로 훌륭한, 그리고 많은 것을 소유한 분이었다. 하나님을 잘 믿고자 하는 소원이 있는 분이었다. 교회를 위해 많은 것을 헌신하던 분이었다. 그러나 교회 일에 많이 참여를 하던 와중에 교인들과 리더들에 대한 실망과 그들로 인한 마음에 많은 상처를 받아 교회 뒷전으로 자리를 옮긴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을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가 주고 받은 상처와 아픔은 그 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주신 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 그를 향해 가지고 계신 삶을 살지 못하게 그를 묶고 있다는 사실을 보게 하셨다. 그런데 이 분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의 이야기며 많은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교회를 열심히 오랫동안 다니고 있지만 우리는 교회 안에서 다른 믿는 사람들과 많은 불평, 원망 상처를 주고 받는 일들을 하고 있지나 않은지….

누가 옳고 그름을 떠나 삼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모두가 생각해야 할 것은 행여나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잘못 사용 하고 있지나 않은지이다. 그래서 내게 있는 지식이나 소유로 사람들을 판단한다. 그러다가 상처를 주고 받는다. 그리고 하나님에게까지 불평하고 원망할 수 있는 것이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삼손이 거룩한 나실인으로써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을 이루었다면 그 결과가 어떠했을까? 삼손이 거룩한 나실인의 맹세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그가 할 수 있었던 구원은 부분적이며 일시적인 것에 끝나고 말았다. 하나님의 의도는 나실인으로 사는 삼손을 통한 완전한 구원이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를 기대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이 부르신 그 어떤 사람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사용할 때는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 이루어지고 나타나는 축복이 있을 것이지만 그렇지 못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지 못하는 반쪽짜리 삶을 살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오늘은 내게 주신 부르심과 그 부르심을 위해 하나님이 내게 있게 하신 것들을 내가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하나님의 듯에 합당하게 사용하는지를 깊이 생각해 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