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 #49 “예언” (강찬영)

[렘 25:2-5] "2선지자 예레미야가 유다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모든 거민에게 고하여 가로되 3유다 왕 아몬의 아들 요시야의 십 삼년부터 오늘까지 이십 삼년 동안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기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되 부지런히 일렀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 하였으며 4여호와께서 그 모든 종 선지자를 너희에게 보내시되 부지런히 보내셨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으며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도 아니하였도다 5이르시기를 너희는 각기 악한 길과 너희 악행에서 돌이키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너희와 너희 열조에게 옛적에 주어 영원히 있게 한 그 땅에 거하리니"

요사이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예언의 말씀의 대부분은 격려의 말씀이다. 재앙이나 멸망에 대한 예언은 별로 없고 또 대부분 듣고 싶어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예레미야에게 주신 백성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은 재앙과 심판의 말씀이었다. 그 당시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있었고, 백성들은 그들이 들려주는 평강에 대한 예언에만 귀를 기울이던 것을 보게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때에도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을 종종 듣게 된다. 몇일 전에는 미얀마에서 토론토 출신의 목사가 법을 어겨가며 집회를 하면서 하나님을 잘 믿는 자라면 절대로 코로나에 감염될 수 없다 라는 말을 한 사건을 뉴스에서 보게 되었다. 그런가하면 선지자라고 자칭하는 어떤 목사는 코로나 재앙 이후에 하나님의 큰 축복이 있을 것을 외친다. 과연 어떤 예언이 하나님께로 온 것인지를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

예언은 먼저는 듣는 사람에게 유익한 것이어야 한다. [렘 23:32]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하지 아니 하였나니 그들이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유익”은 원어로 우리가 알고 있는 유익하다는 뜻과 함께 ‘정상, 꼭대기를 올라가다’의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즉 정상을 올라가게 할 수 있게 하는 유익을 말한다. 나는 올라갈 수 있는 힘이나 지혜가 없는데 예언을 통해 나로 하여금 오를 수 있게 한다는 말이다. 이런 의미로 볼 때 예언은 듣는 자에게 하나님이 뜻하시는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유익”을 단지 자신을 높이거나 장래에 좋은 일이 있게 된다는 듣기에 달콤한 말씀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유다 백성과 다름없이 소망과 꿈을 주는 예언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며, 예언하는 사람도 그런 소망과 꿈을 말하는 예언에 치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에게서 온 예언이 줄 수 있는 진정한 유익은 무엇보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일이다.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것은 마치 탕자가 돼지우리에서 고생을 하다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누리는 아들로 변화됨과 같은 유익한 일이다. 탕자가 재산을 탕진하며 파티에 열중하고 있을 때 그는 몰랐지만 사실은 그는 이미 돼지우리의 살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같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여러 선지자들의 예언을 통해 하나님을 떠나 ‘세상의 돼지우리’에서 살고 있는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고자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돌아가는 일은 산에 오르는 것처럼 힘든 일일 수 있다. 그렇기에 예언은 우리로 하여금 참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산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돕는 유익한 것이 되어야한다. 사람의 생각이나 상황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상황 가운데, 그런 예언을 듣고 하나님에게 돌아갈 힘을 얻어 그리할 때에 그 모든 것을 극복하며 하나님의 뜻하신 일을 이룰 수 있게 하시는 것이다. 나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과정을 겪고 있었을 때, 모든 것을 견디고 극복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습 3:17절의 말씀이다. 나는 실패자며 낙오자라는 생각에 빠져 있었을 때 이 예언의 말씀을 통해 내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아들이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셨다. 그 당시에 나는 너무나 힘든 인생의 위기 과정을 지나고 있었는데 이 예언은 나로 하여금 모든 것을 극복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면 예언이 어떻게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돌이키게 하는 것일까? 예언은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여 악에서 돌이키게 함으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재앙과 심판을 말씀하실 때, 그분의 속마음은 그것을 들은 백성들이 죄를 깨닫고 돌아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재앙 가운데 있을 때, 그 재앙을 벗어나게 되기를 기도하기 이전에, 먼저 내가 떠나야 할 죄가 무엇인지를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재앙을 우리로 하여금 나의 죄를 생각하고 깨닫게 하는 도구로 사용하신다. 죄를 해결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라면 악한 길과 행위를 깨닫게 하는 예언을 하게 될 것이다. [렘 23:22] “그들이 만일 나의 회의에 참예 하였더면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

참된 예언은 단순히 격려의 말씀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세히 살펴볼 때 그 안에는 듣는 사람이 돌이켜야 할 영역, 즉 그들 안에 다루어져야 할 영역이나 죄에 대한 말씀이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예언을 하던 아니면 듣던,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일을 기대하며 흥분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돌이키기 원하시는 영역에 대한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수 년 전 코나 하와이에서 CDTS(제자훈련학교)에 참석하고 있을 때, 한 강사 목사님이 학생들에게 예언 기도를 해 주신 시간이 있었다. 그 때 학생 중 나이가 지긋한 장로님이 한 분 계셨는데 “네가 겸손 가운데 행하면 하나님이 당신을 높은 자리에 두셔서 영향력을 미치는 삶을 살게 하실 것입니다” 라는 예언을 받으셨다. 그분은 마침 제자훈련을 받은 후 국회의원 선거에 나갈 후보로 공천을 받은 때였기에 그 기도를 듣고 너무나 기뻐서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해 하셨다. 클래스에서 그 분이 이미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처럼 축하하는 법석이 일어났다. 그런데 후에 그분이 선거에서 당선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예언이 잘못된 것일까? 생각할 때, 기억나게 된 것은 “겸손 가운데 행하면” 이라는 대목이었다. 하나님은 참으로 그분을 높여 하나님의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였는데, 어쩌면 듣고 싶던 뒷부분만 들으채 중요한 첫 부분은 마음에 담지 못했던 것이라는 이해를 갖게 해주셨다.

나의 경우도 하나님은 나를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자로 세우신다고 하셨지만 그 일을 위해 하나님은 [신 8장2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을 통해 낮아지라고 하셨다. 나는 한동안 세상적으로 잘 나가게 되면서 어느새 내가 잘해서 그렇게 된 줄로 그래서 내 마음대로 결정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악한 것인지도 모르다가 하나님은 나에 대한 당신의 일을 이루기 위해 그 광야의 시간을 주셨고, 그 광야의 길을 통하여서야 나의 생각대로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을 인정치 못하는 교만인 사실을 알게 하셨던 것이다.

코로나같은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마음을 갖게 되곤 한다. 그러면서 예언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같이 예언의 말씀을 들을 때 어떤 축복의 일을 바라기 이전에 먼저는 하나님이 나를 시험하시고 고치고자 하시는 뜻을 헤아려야 한다. 내 안에 있을 수 있는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분별해야 할 것이다. 그 때에 그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유익이 되는, 하나님께 돌이키게 하는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 가운데 이루어지는 예언의 말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