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 #48 “혹시 그 모든 기사로 우리를 도와 행하시면…” (강찬영)


[렘 21:1] "시드기야왕이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를 보내어 예레미야에게 말하기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우리를 치니 청컨대 너는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라 여호와께서 혹시 그 모든 기사로 우리를 도와 행하시면 그가 우리를 떠나리라 하던 그 때에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언제 함락될지 모르는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상황 가운데 시드기야왕은 하나님이 기사로 자기를 도우실 것을 구한다. 그동안 이미 여러차례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기사”만을 구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문제의 원인은 고치지 않고 드러나는 현상만 고치려 하는 어리석음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본문이 보여 준다.

지금 온 세상은 코로나염병이 떠나가기를 구하고 하루 속히 vaccine이 개발거나 상황이 기적같이 달라지게 되기를 구한다. 그렇게 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잘못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들으려 하지도 않은채 우리의 원하는 것만을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셔서 때로는 그런 우리의 억지같은 간구를 들어주기도 하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오늘 이야기에서는 시드기야가 구하는 하나님은 “기사”를 행하지 않으시고 두 가지 선택을 왕의 간구에 대한 답으로 보여 주신다. 곧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이다. [8절] “…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니” 하나님은 그들이 처해 있던 위기에 대해 기사가 아닌 구원에 이르게 하는 “길”을 주기를 원하셨다는 사실이다. 무엇을 말씀하신 것인가? 우리가 처한 위기나 염병 가운데 구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길’’이지 행사나 기사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계속 행사 또는 기사로 어떤 상황을 모면하기 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길, 생명의 길을 택함으로 구원을 얻기 원하신다. [히 3: 9-10] “9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년 동안에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10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를 노하여 가로되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하나님은 행사, 곧 기사를 행하시며, 그것을 보는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길’을 아는 자가 되기를 바라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10번이나 광야에서 위기를 당면했을 때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사를 구했고 보았지만, 하나님이 뜻하신 ‘하나님의 길’을 아는 일에는 실패한 것이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수없이 당신의 길이 무엇인지를 말씀해주셨다. 우리의 삶에서도 이미 여러번 하나님은 길에 대해 말씀하시고 또 보이기도 하셨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길을 알지 못하고 생명의 길이 아닌 사망의 길을 택하는가? 우리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으며 또 세상의 방법, 즉 세상의 길과 다르기 때문이다. 결코 가고 싶지도, 가서는 안될 것 같은 길로 여겨진다. 출애굽을 하자마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는 기사를 경험한다. 그런데 실상 홍해 사건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리시며 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길(방법)이었다. 그러나 과연 홍해를 건널 때 그 길이 하나님의 길인것을 알고 행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있었을까? [출 14:31]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을 보았으므로…” 유감인 것은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의 대부분은 하나님의 길이 아닌 홍해 밑에 길을 내신 하나님의 큰 일(기사)을 보는 것으로 그쳤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성을 나아가 바벨론 군대에게 항복하는 것만이 생명의 길이라고 하신다. 그런데 왕은 ‘항복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방백들과 백성들이 무엇이라 할까…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이방인들에게 항복할 수 있는가? 그런 끔찍한 일은 결코 겪을 수 없다. ‘ 등등의 생각 가운데 사망의 길을 택한 것이다. 이 시드기야 왕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길, 생명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가? 그것은 오직 하나님을 믿음로 그분의 말씀을 들음으로 가능하다. [시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말씀이 빛이요 등이라고 하신다. “등”은 어두운 길에서 내가 내디뎌야 할, 앞의 몇 발자국을 보여주는 것이다. “빛” 은 내가 행하는 길의 방향을 보여주고 나로 하여금 다른 길로 빠져 나가지 않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그런 등이며, 그런 빛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우리의 인간적인 생각, 지혜, 자랑, 이론, 상황을 뛰어넘게 하는 능력과 권세이다. 또한 우리의 생각과 길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높은 그분의 생각과 길을 알게 되는 특권이다. [사55:9]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지금의 상황에 대해 vaccine이나 어떤 기적 같은 일을 구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길을 구하라신다. 하나님 앞에 홀로 서서 말씀을 듣고자 기다릴 때 말씀해 주실 것이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그 생명의 길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을 만나며 그분이 이루시는 의롭고 선한 일을 반드시 보게 될 것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