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 #47 “자기 의견에 선한대로” (강찬영)


[렘 18:1-5] "1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에 가라사대 2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서 내 말을 네게 들리리라 하시기로 3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4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파상하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선한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5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하나님은 만들던 그릇이 파상할 때 자기 의견에 선한대로 다른 그릇을 만드는 토기장이에 자신을 비유하신다. 하나님이 토기장이인 사실을 가르치신 사건이지만 특별히 “자기 의견에 선한대로”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마음대로 하신다는 말이다. 그런데 얼핏 들으면 자존심이 상하는 말이다. 우리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다른 사람의 마음대로 우리에 대한 결정을 한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그 누가 다른 사람이 나의 장래를 결정하는 것을 좋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 마음대로 우리를 위해 뜻을 정하신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 마음의 생각이나 뜻은 잘못된 결정을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렘 17:9절]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마음대로 결정하신다.

“선한 대로”(seemed good) 라고 번역된 히브리 단어의 뜻은 ‘to make it straight, proper or pleasing’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즉 하나님 보시기에 구부러진 것을 바르게 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죄악으로 인해 파상한 그릇인 우리를 새 것으로 만드시되 우리 안에 있는 구부러진 것, 잘못된 것들을 옳게, 바르게 하셔서 “자기 의견에 선한대로” 만드시는 하나님이시다. 이같이 하나님의 마음대로 하시는 것은 바르고 옳은 것이 되게 하는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그분의 뜻대로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바르게, 곧게, 마음에 합당한 것으로 만드신다면 그것은 선한 것임을 믿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원래 하나님이 뜻하셨던 모습의 그릇이 되게 하기 위해 바르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 139편에 의하면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생각은 “보배로운 생각”이다. [시 139:17-18] “17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18 내가 세려고 할찌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이같은 보배로운 생각들에 따라 만들어진 그릇이 원래 하나님이 만드신 그릇이다. 하나님이 마음대로 하실 때는 언제나 선한 목적을 위해 만드신다 .

정말 놀라운 사실은 “의견에 선한 대로”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말씀하시는 것을 듣지 않을 것을 아시면서도 하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당신의 의견의 선한대로의 다른 그릇으로 만드시려 하지만 백성들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12절] ”그러나 그들이 말하기를 이는 헛된 말이라 우리는 우리의 도모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의 강퍅한대로 행하리라 하느니라 ”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한 말씀을 듣고 재앙을 피할 수 있는 길을 행할 수 있었지만 악한 마음의 강퍅함 가운데 스스로의 뜻대로 행할 것을 작정한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강퍅함을 아시고서도 의견에 선한대로 파상한 그릇을 다시 만들고자 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받을 자격이나 권리가 없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하나님을 불순종하겠다고 작정한 우리들에 대해 그래도 당신의 선한 의견대로 우리를 지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레미야서에 나타난 긍극적인 하나님의 결론은 이스라엘 백성이 잘한 것이나 뉘우친 것이 없고, 또는 구하지도 않았는데도 하나님은 이방 나라들의 교만과 강포를 핑계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그들로 하나님의 백성되게 하시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의견에 선한대로 행하실 때에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세상의 기준으로 생각할 때는 어리석게 여겨진다. 탕자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은 탕진하는 것임을 보이셨다. 주님을 십자가에 달려 우리를 대신하여 죽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탕진함이었다. 큰 아들과 같은 우리의 관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 납득이 안되는 처사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어리석음”과 “사랑을 탕진하심”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다행인지…탕자가 아버지께 자신을 온전히 의탁했을 때 있게 되었던 선한 일이 우리에게도 있을 것을 약속하신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께 우리의 장래를 위탁하고 의지하는 것만이 우리의 살 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염병으로 인해 파상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 때에 하나님께서 의견에 선한대로 행하실 것을 믿고 구해야 할 것이다. 무엇을 하시던 하나님의 일이야말로 선한 것이며 우리에게 축복이 될 것이기에 하나님을 신뢰하며 우리 모두가 이 코로나 사태 가운데 하나님의 의견에 선하심에 자신을 온전히 맡겨 드리는 자들로 일어날 때 하나님의 선하심과 탕진하는 사랑을 누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