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 #46 “베띠의 비유” (강찬영)


[렘 13:1-11] "1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베띠를 사서 네 허리에 띠고 물에 두지 말라 하시기로 2내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띠를 사서 내 허리에 띠니라 3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4너는 사서 네 허리에 띤 띠를 가지고 일어나 유브라데로 가서 거기서 그것을 바위 틈에 감추라 하시기로 5내가 여호와께서 내게 명하신대로 가서 그것을 유브라데 물 가에 감추니라 6여러 날 후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유브라데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하여 거기 감추게 한 띠를 취하라 하시기로 7내가 유브라데로 가서 그 감추었던 곳을 파고 띠를 취하니 띠가 썩어서 쓸데 없이 되었더라 8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9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이같이 썩게 하리라 10이 악한 백성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하고 그 마음의 강퍅한대로 행하며 다른 신들을 좇아 그를 섬기며 그에게 절하니 그들이 이 띠의 쓸데 없음 같이 되리라 11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띠가 사람의 허리에 속함 같이 내가 이스라엘 온 집과 유다 온 집으로 내게 속하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이 되게 하며 내 이름과 칭예와 영광이 되게 하려 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베띠를 사서 허리에 띠었다가 유브라데 강에 있는 바위 틈에 감춘다. 여러 날 후에 또 말씀 하신대로 띠를 취했더니 그 띠가 썩어서 쓸데없이 되었음을 보게 된다. 요새는 유행에 따라 각양가색의 띠를 띠지만 예전에는 어떤 띠를 띠었느냐에 따라 다른 신분을 보여주는 것이 띄의 역활의 하나였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로 하여금 새 띠와 썩어진 띠를 보고 두 모습의 다른 것을 알게 하신다. 만일 예레미야가 처음에 새 띠의 어떠함을 보고 알지 못하였다면 썩은 띠가 나쁜 것인줄 알 수 없었다. 새 띠를 알지 못할 때 우리는 썩은 띠가 좋은 것으로 잘못 판단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새 띠를 허리에 띠게 하신 후 예레미야에게 강물 속에서 썩어진 띠를 보게 하심으로 새 띠와 썩은 띠의 차이를 보게 하신 것이다.

새 띠는 하나님의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원래의 의도를 상징한다. 하나님은 그들이 어떤 신분의 사람인 사실을 기억하기 원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썩어지 띠와 같이 하찮고 쓸모 없는 백성들로 전락한 그들이 행여나 돌아올까 기대하시는 가운데 예레미야를 통해 두 띠에 대한 이야기를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새 띠를 향해 가지고 계셨던 원래 의도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에게 속하게 하여 그들로 하나님의 칭예와 영광을 나타내는 당신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이었다[11절]. 즉, 백성들이 처음 새 띠의 모습을 유지할 때, 즉 허리띠가 사람의 허리에 붙어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 속해 있을 때는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나타낼 존귀한 존재였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말씀을 듣지 않고 그를 떠나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오랜 세월 동안에 걸쳐 썩은 띠로 전락해 버린 것을 보이신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께 속한 띠로 남아 있으면 “하나님의 자랑”이 되었을 터인데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었던 모든 것은 “그들의 교만”[9절]이 되어 버린 것이다.

요사이 사람들은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을 고대한다. 이미 사람들 안에 풀어진 느낌이 들 정도로 자동차도 많이 다니고 사람들도 길거리에 많이 보인다. 우리는 많은 생각없이 당연히 이전의 삶이 우리가 돌아가야 할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돌아가고자 하는 이전의 삶이 과연 하나님께 속한 띠와 같은 삶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코로나 이전의 나의 삶이 과연 그런 하나님께 속한 삶이었는가? 하나님의 허리에 있는 베띠로 하나님의 어떠함을 드러내는 자였는가? 우리 모두가 그런 삶을 살기를 소원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 속한 삶과는 거리가 먼 삶이 아니었나? 왜 믿는 사람들과 교회가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가? 이 문제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내가 돌아가야 할 마땅한 삶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내가 주님을 처음 믿었을 때 나에게 주신 새 띠의 삶이 무엇이었는지를 분명히 기억할 필요가 있다. 11절은 그것을 “그들로 내 백성이 되게 하며 내 이름과 칭예와 영광이 되게 하려” 하신 것이라고 말해 준다. 그것은 죄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생명과 자유를 누리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이루어감으로 하나님으로 명성과 칭찬과 영광을 받으시게 하는 것이다.

무작정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를 즐거워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 때는 바로 하나님이 뜻하신 새 띠로 살지 못하고, 오히려 ‘썩어 쓸데없이 [7절]’ 된 띠로 산 것을 깨닫게 하시는 시간이다. 그렇기에 먼저는 깨닫게 하시는 개인의 죄를 회개를 통해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온전히 속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삶’으로 돌아갈 것을 작정해야 하는 것이다. [10절] “이 악한 백성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하고 그 마음의 강퍅한대로 행하며 다른 신들을 좇아 그를 섬기며 그에게 절하니 그들이 이 띠의 쓸데 없음 같이 되리라 “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께 속할 수 없었고 하나님의 명성과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지 못하게 되었던 것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제 코비드 상태가 끝나 교회로 사회로 돌아갈 때는, 이전의 삶이 아닌 하나님께 속한 삶으로 돌아가야한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사는 비결은 말씀을 듣는 것임을 10절에서 말씀해 주셨다.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었을 때 처음 주신 말씀은 무엇이었나? 하나님 앞에 홀로 앉아 말씀을 들으라는 것이었다. 이미 2달 가까이 계속되는 과정 가운데 나는 얼마나 말씀을 듣는 자로 노력해 왔는가? 그저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듣고 행하는 청종하는 자로서. 아니면 알면서도 듣지 않아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리 떨어진 자인가?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돌이켜 보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