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있는 사람

시편 1편은 복있는 사람을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로 표현한다. 렘 17장 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의뢰하는 사람을 물가에 심기운 나무라고 하신다. 즉 복있는 사람은 물에 가까이 거하는 나무인 것이다. 

사 55장은 목마른 자들에게 물로 나아오라 하시고 나를 청종하라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께 나아와 들으라고 하신다. 즉 물은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사람들은 복을 받고자 하면서도 물에 가까이 있는 나무가 되기는 원치 않는다. 나무 보다는 강한 능력있는 타작기계가 되기를 원한다. 산과 작은 산을 까부러트릴 수 있는 ....그래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높임을 받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

그런 야망을 가진 우리에게 사 41:14절은 "지렁이같은 너 야곱아..." 하시며 약아 빠지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며 남을 짖밟고 올라가기 위해 속이는 일을 마다치 않을 수 있는 야심을 가진 야곱과 같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력한 "지렁이"가 되라고 하신것이다. 지렁이가 뙬 때 하나님이 우리를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계로 삼아 산들을 쳐서부스러기를 만들고 작은 산들을 겨같게 하신다고..

지렁이는 나무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내세우거나 자랑하거나 드러내거나 그러기 위해 자기의 권리나 힘을 사용하지 않는다. 다투거나 데모를 한다던가 자신의 글을 통해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평가하지 않는다. 심지어 법정에 가서 옳고 그름을 밝히고자 하지 않는다.

성경에 나오는 복있는 자의 삶의 모델이되는 요셉이나 다니엘이나 모세는 지렁이와같은, 나무와 같은 삶을 살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헌신(commit)했던 사람들이다. 다니엘은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뜻을 정하였다. 요셉은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지 않기로 작정했던 사람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온집(어리석은 반항하고 불신하는 백성들 까지 포함해서)에 충성된 자였다. 

이들의 특징은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자기가 가진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 다투지 않았다. 무력을 쓰지 않았다. 이들을 하나같이 당하고 참고 견디는 가운데 하나님과 말씀에 헌신된 자들이었다.

주님은 어떠했는가?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셨던 주님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같이 입을 열지 않으시고 강포를 행치 않으셨으며 그 입에 궤사가 없으셨다. 그래서 마침내는 자기 목숨을 스스로 버림으로 목숨을(주님과 우리의) 얻으신 구세주가 되신 것이다.

요즈음 세상에는 하박국 선지자가 보고 느꼈던 것처럼 강포와 간악과 패역과 겁탈과 강포와 변론과 분쟁과 해이한 율법이 있는 때이며 공의가 시행되지 못하는 때이다. 

그런데 2019년에 복있는 자가 된다는 것은 말씀과 가까이 하는 나무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그래서 폭풍을 당하고 바람이 불더라도 뿌리를 깊이 내렸기에 (하나님께 헌신함에 흔들림이 없기에) 절대로 넘어지지 않고 푸른 입사귀와 시절을 따라 열배를 맺는 삶을 살 게될 것을 약속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수고는 무엇을 하는데 있는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 어떤 나무로 사는데 해답이 있음을 기억하라신다. 내가 어떤 나무 어떤 세상의 빛, 어떤 지렁이가 될 때 그렇게 내가 이루고자 주장했던 일들을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염려하고 다투고 싶었던 증명하고 싶었던 일을 하나님이 판단하시고 벌하시고 입증하실 것이다. 이 진리를 다니엘, 요셉, 모세 그리고. 긍국적으로 주님이 이미 삶으로 증명해 주신 것임을 알라고 하신다. 

2019년에 장막장이들이 하나님이 세우신 어떤 나무, 지렁이가 되어 빛을 발하고 뜻을 정하여 하나님이 맺게하실 열매들을 가지는, 산들과 작은 산들을 까부러 트리는 축복의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라도 말씀에 거하는 삶을 살기로 뜻을 정해야 한다. .... 이것만이 우리의 살길, 새길이며 생명의 길이다. 아멘.